넥스트 코드 Next Code (2019)



대전시립미술관
2019. 4. 9 - 5. 19



기획의도

대전을 비롯해 충청을 기반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를 발굴하여 전시하는 <넥스트코드>는 중부권 미술의 정체성을 찾고자 중장기 계획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우리 미술관의 가장 오래된 정례전 중 하나이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전환의 봄>이라는 전시 명으로 시작된 청년작가지원전은 2008년부터 넥스트코드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정신을 조명해오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인 넥스트코드는 공립미술관의 중요한 역할인 미술문화투자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미술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작가를 양성한다는 의의가 있는 프로젝트이다. 20년 동안 발굴된 125명의 역량 있는 지역의 젊은 작가들은 각자 고유한 감성과 사고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차별화된 조형언어를 선보였으며, 국내, 외 미술계의 동량지재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전, 충남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인 <넥스트코드 2019>의 이번 공모에는 총 56명의 작가가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보다 공정한 작가선정을 위해 외부전문가 심사 및 회의로 김재연, 노상희, 박승만, 박용화, 이윤희, 이재석, 장재민 7인을 작가를 선정했다. 이번 공모를 통해 대전의 젊은 작가들이 표현하는 주제가 다양하고 특히 회화 매체의 강세가 두드러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정된 7명의 작가들의 새로운 시각 코드는 본인이 경험한 시의성을 바탕으로 대전 지역뿐만 아니라 국내, 외 미술계에서도 주목할만한 작품성을 특징으로 한다.



아스팔트 위의 산책자

《넥스트코드 2019》에서는 김재연, 노상희, 박승만, 박용화, 이윤희, 이재석, 장재민 7인의 작가를 선정했다. 이들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지역적 연결고리를 지닌 채 동시대 도시-사회의 구조와 단면을 본인만의 시선으로 사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의 파리의 산책자(Flneur)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프랑스 파리는 대규모 도시 재설계가 진행중이었는데 이와 동시에 새로운 도시 공간 속 새로운 삶의 양상을 관조하는 산책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산책자들은 목적성을 상실한 채 정처 없이 유랑하는 보헤미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시-사회를 관찰하는 탐정의 기질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양가적인 특성들이 상충하는 산책자들은 여러 이미지와 텍스트로 얽혀있는 대도시의 시각적 현실을 독해하는 주요 주체로 기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넥스트코드 2019》 7명의 작가들은 산책자이자 아스팔트 위의 채집자이다. 이들은 회화나 사진, 뉴미디어, 도예 등 표현하는 매체는 각기 다르지만 본인이 경험한 시의성을 바탕으로 도시-사회 구조를 탐색하며 다각도의 재맥락화를 시도한다. 이들은 도시-사회 속에 파편화되어 저장되어있는 시간이나 물질, 기억의 흔적들을 발굴하며 새롭게 생성해낸 의미를 다듬는다. 이처럼 채집되고 발굴된 도시-사회의 텍스트는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이미지로 변환되고 확장된다.



작가정보

챕터1. 산, 나무, 강

산책자는 잊혀지거나 버려진 것, 하찮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발굴하기에 대상의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 김재연, 장재민은 늘 그 자리에 존재하지만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에 시선을 두며 새로운 의미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동일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끊임없는 풍경의 변화상에 대해 이들은 각자 사진으로, 회화로 남겨진 것들을 기록한다. 그리고 산과 강가에서 기억과 장소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며 씨앗과 기억을 채집한다.

 

김재연

김재연에게 자연은 주요 소재이자 매체이다. 그의 작업 전반에는 식물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이 묻어난다. 작가는 대청댐 인근의 자연공원을 배경으로 식물의 개별적인 얼굴을 찾아주려 시도했다. 〈A Portrait〉는 이틀에 걸쳐 첫째 날에는 흑백필름으로, 둘째 날에는 컬러필름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두 장의 필름을 동시에 스캔함으로써 색이 깨지고 노이즈가 생겨 초록빛의 독특한 색감과 흐릿한 잔상이 생성되었다. 〈0g Drawing〉은 약 25종 이상의 씨앗을 채집하고 이를 필름과 중첩시킨 상태로 이미지를 구현한다. 민들레 씨앗과 같이 흰색 털을 가진 씨앗은 필름과 동시에 스캔했을 때 스캐너의 빛에 반사되면서 몽환적인 이미지를 연출한다. 〈가루산〉은 전원주택 단지 개발로 가루가 되어 사라질 집 근처의 이름 없는 산에 관한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산의 풍경을 OHP 필름으로 인쇄하고 다시 스캔하는 과정에서 노이즈나 균열 등 인위적인 조작을 의도한다. 사진의 기록성과 디지털 이미지의 조작성을 혼합하여 땅이 자연의 일부가 아닌 돈으로만 환원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장재민

장재민은 풍경을 그린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현실에서 경험한 산, 물가, 돌, 나무 그리고 낚시터, 공사 부지, 재난 지역 등 소외되고 고립된 사각지대의 공간이다. 〈Black Response〉의 경우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인한 전사자 위령비를 소재로 한다. 나무의 마른 가지 등 주변의 황량한 풍경을 소재로 재난과 상실의 분위기를 보편적인 풍경으로 제시한다. 〈비린 곳〉은 낚시터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작가가 경험한 장소의 분위기를 구현했다. 거대 화폭에 재배치한 풍경은 전시 공간에서 하나의 장면을 둘러싸고 있던 공기, 온도 등 총체적 감각으로서의 기억의 집합체로 기능한다. 〈자갈과 나무〉, 〈나무 밤〉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은 장소에 의해 규정되는 찰나의 사건이다. 따라서 주변부 풍경의 보호색을 띄고 화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인물이 아닌 나무를 그리고 이를 자화상이라 명명하며 당시의 감정 상태를 확인하곤 한다. 이는 사람을 풍경의 질감처럼, 풍경을 사람의 살갗처럼 대하는 작가관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야산불꽃〉에서는 추상성이 강화되고 경계가 더욱 허물어지지고 있으며, 〈길의 끝〉에서는 붉은 갈색톤의 색채가 등장하는 등 화면 구성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챕터 2. 동물원과 군대

박용화, 이재석은 각각 동물성과 인간성, 신체성과 사물성이라는 양가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회화 및 설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산책자의 개념을 외부로 확장하면 결국 산책자가 점유하는 도시-사회라는 공간이 담지하고 있는 장소성을 규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들은 각각 동물원, 군대라는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규정되고 삶의 공간적 차원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 그 상호작용성에 대해 탐구한다.

 

박용화

박용화는 인간성과 동물성의 이중적인 경계를 통해 동시대의 불안을 포착한다. 동물원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인간의 눈요깃감을 위해 존재한다. 작가는 대전의 레지던시에서 활동하면서 근처 동물원을 자주 방문하며 자연을 가장한 인공 문명 안에 갇힌 동물들의 절망적인 심리를 재현해왔다. 〈불안이 담긴 동물원〉, 〈억압된 공간의 본능적 표현〉 등 작업을 통해 말라비틀어진 동물들의 사체, 배설물로 뒤범벅된 새들과 해골 등 알레고리로 공간을 상징해왔다. 그러던 중 2018년 9월 동물원에서 사육 중인 퓨마 ‘호롱이’가 사육장을 탈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작가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다시금 살펴보며 동물원이란 제도와 동물성과 인간성의 관계에 천착하게 되었다. 〈부정당한 존재〉, 〈Human cage〉의 설치 작업을 통해 인간 스스로를 인공적인 공간에 갇힌 동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위계적인 관계와 관람하는 주체가 동시에 전복되는 경험을 유도한다. 작가는 동물 개체에 대한 호기심, 동정심을 넘어 동물과 인간이 맺고 있는 양가적인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재석

이재석은 구성원 간의 서열과 위계질서가 매우 명확한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신체와 사물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총기분해조립교육을 통해 작가는 총의 부품인 ‘노리쇠뭉치’를 새로운 오브제로 삼았다. 총의 내부와 신체의 장기간의 구조적인 유사성을 통해 〈나열된 부품들〉에서는 신체의 장기는 부품처럼, 총의 부품들은 장기처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군병원에 입원했던 시기에 관찰했던 침대 위 정렬된 환자들의 모습을 구속된 신체로 표현했다. 〈fragement〉는 관절이나 특징이 되는 부분을 변형시키며 살성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의 관심은 양가적인 것들의 경계를 아우르는 이질적인 결합체에로 옮아가는데, 〈채석장 광부〉, 〈뇌풀기〉와 같이 마네킹이나 해골, 보철로 신체성과 사물성의 경계성을 고찰한다. 이제 그의 도상은 신체와 사물뿐만 아니라 내부와 외부, 자연과 인공, 관념성과 질료성 등 양가적인 개념들의 조합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즉 유기체와 무기체, 부분과 전체 등 양가적인 속성의 혼성융합을 시도하며 하이브리드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챕터3. 디지털 판옵티콘

산책자는 도시계획이라는 시스템을 인지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저항적 주체이기도 하다. 이는 산책자의 주요 문제의식이 현대 도시-사회 공간을 전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노상희에게도 이러한 관찰자적 산책자의 면모가 드러나는데, 그가 특히 주목하는 주제는 외부 시스템의 통제로 인한 신체적 반응이다. 이는 개인에게 강제되는 비가시적인 사회적 요인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상희

노상희는 회화, 드로잉, 뉴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시스템 속 미시 세계를 구현한다. 〈감정, 울림, 감각〉은 10명의 다국적의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을 만나면서 어떤 공간과 시스템이 불안을 초래하는지에 관해 인터뷰한 영상 작업이다. 동시에 인터뷰 대상의 심박측정, 심전도(Electrocardiogram, ECG)를 측정한 데이터를 모래 위에 프로젝션 맵핑으로 시각화한다. 그 중 드로잉 작품은 인터뷰 대상의 심박수 데이터의 평균치를 디지털 기술의 상징인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의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1바이트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무한에 가까울 만큼 영향력을 과시하는, 데이터에 종속된 동시대 네트워크 구조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미세먼지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포와 신경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시각화했다. 그가 말하는 강제적인 시스템은 디지털 권력이나 스트레스, 미세먼지, 여성으로서의 불안감 등 개인적인 삶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의 일상에 만연하기에 때문에 시스템 속 개체로서 오히려 둔감하게 반응하는 역설적인 지점들을 탐구한다.

 

챕터4. 현실과 비현실

벤야민의 산책자가 거닐었던 통로이자 건축물인 파사주(Passage:Arcade)는 유리천장과 철로 구성되었으며,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을 상징한다. 파사주는 외부가 내부로 들어가고 내부는 외부로 확장되는 구조적인 특징으로 인해 외부와 내부의 개념을 모호하게 만든다. 박승만, 이윤희는 각각 사진, 도예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모호한 실재성을 선보인다. 그리고 파사주가 미로와 같은 환영 공간을 창출하듯 이들 역시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의 알레고리를 혼합함으로써 환영의 서사를 창조한다.

 

박승만 

박승만의 〈경계〉 연작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추모하며 생전에 거주했던 공간과 남겨진 사물인 유품들을 새로운 오브제로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공중에 떠있는 유품을 연출한다. 의자나 이불 등 사진 속 사물은 물리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유품이 되었기에 의미론적으로 소멸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이러한 유품에 작용하는 시간과 중력을 제거함으로써 일시적인 소생을 시도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성을 탐구하고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경계〉의 두 번째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즉 작업의 주요 소재였던 할아버지의 유품은 일상적인 사물로, 할아버지의 죽음은 일상적인 죽음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생과 사의 보편적 이야기를 통해 잠재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작업을 지속한다. 이를 통해 할아버지의 유품인 이불, 의자, 책상 등의 사물의 물질성에 국한되지 않고 사물의 존재론적인 본질에 대해서 포착하고자 한다.

 

이윤희

이윤희는 맑은 백자에 금칠을 더해 화려한 채색과 정교한 형태를 완성하는데, 이러한 조형성에는 종교적인 성스러움과 경외감이 짙게 배어있다. 작가는 생과 죽음 등 삶의 총체적인 단면들을 종교와 신화의 이야기로 차용하며 제시한다. 중세 중교화가 비유나 상징을 통해 성서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듯이, 작가는 단테의 『신곡』을 모티프로 한 〈신곡 La Divina Commedia〉 시리즈를 통해 자신만의 서사를 생성하고 있다. 생명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해골, 치유를 상징하는 붕대, 안식처를 상징하는 샘물 등 알레고리의 집합체로 단테의 『신곡』의 장면 장면을 전달한다. 특히 〈거미줄의 성 The Castle Of The Spider's Web〉의 경우 지옥편의 탐욕 중 식욕을 경계하는 메시지를 그릇 속에 담긴 해골과 꽃 등의 알레고리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여정에는 자전적인 형상의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욕망과 불안으로부터 시작한 여정은 깨달음을 통한 자아 치유를 거쳐 영혼의 안식을 찾는다. 『신곡』의 마지막 구절처럼 해와 별들이 움직이는 사랑의 구원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