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릭버스터 Angelic buster (2023)


2023. 12. 6.(수) - 12. 23.(토)


기획: 김세인 @ratdsratds

그래픽디자인: 김예슬 @kim_yesul_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카다로그 (@cadalogs_space)

서울시 중구 수표로 58-1 3층

월-금 13:00 ~ 19:00

토-일 13:00 ~ 18:00 (휴무 없음)


𝒜𝓃𝑔𝑒𝓁𝒾𝒸 𝐵𝓊𝓈𝓉𝑒𝓇

Seungmann Park

Dec 6 — 23, 2023


Curated by Kim Sein

Graphic Design by Kim Yesul

Supported by Arts Council Korea, ARKO Creative Academy


Space Cadalogs (@cadalogs_space)

3F, 58-1, Supyo-ro, Jung-gu, Seoul

Mon-Fri pm 1-7

Sat-Sun pm 1-6 (No days off during the show)



쌀먹충 게이머-사진가의 태도에 관하여 / 김세인

우리는 이제 이미지에 얽힌 진실을 그 생산자나 재현 대상보다는 데이터를 통해 좇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미지가 언제나 데이터와 연결되어 있을수록, 어떤 이미지 산출물이 실재적인 무언가를 지시한다는 믿음은 더 강하게 요청되는 셈이다. 그 믿음은 특히나 가상에의 몰입을 위한 필수적 소양이며, 당연하지만 그것은 게이머의 멘탈리티에 가장 전형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을 ‘인게임 노동’이라는, 그 바깥의 현실과 분간하기 어려운 지평으로 치닫게 하는 것은 게임 속 아이템이 주는 힘일 때가 많다. 일종의 재화로서의 아이템이란 그것을 획득한 누군가에게는 황홀할 정도로 게임 속 세계와의 구체적 장력을 실감케 하며, 현실보다 훨씬 확연하면서도 컴팩트한 이해득실을 의미하는 데이터인 것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물신적 대상으로 구획하고 표상하는 것은 바로 개개의 아이템에 할당되는 이미지 파일이다.


박승만은 스스로가 <메이플 스토리>와 <디아블로 II>를 거친 온라인 RPG 게이머이자, 거기서 이른바 ‘쌀먹충’이라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다. 전시 제목이 된 ‘엔젤릭 버스터’는 메이플 스토리에서 P2E(Play to Earn)에 최적화된 직업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렇듯 이번 전시는 인게임 노동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박승만은 그것에 대한 섣부른 가치 판단이나 비판적 접근은 유보한 채 어디까지나 게이머-사진가 당사자의 입장에서 아이템의 존재 방식과 그 매혹을 둘러싼 게임적 현실을 사진전의 포맷에 솔직하게 재배치해본다. 복사가 금지된 아이템과 에디션 제한이 걸린 사진 작품이 닮았다는 것은 기본이다.


우선 <사냥, 채굴, 노동의 이펙트>는 메이플 스토리에서의 노동의 근거인, 스킬의 히트 이펙트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화면에 다중 노출시킨 사진이다. 전시에서 유일하게 아날로그 촬영에 의지해 제작된 작품이면서도, 여기서 필름은 이미지를 현상해내기 위한 중성적 장이 아니라 그 입자를 스프라이트에 노출된 픽셀과 함께 시각적 요소로서 등치시키기 위한 재료가 된다. 히트 이펙트의 광휘와 동기화된 카메라 조작으로써, 박승만은 사진을 통한 자신의 이미지 제작 프로세스 자체를 게임에서의 반복 플레이를 통한 재화 창출의 유비 또는 의사적 등가물로서 가시화한다.


그 반복 플레이는 엔젤릭 버스터를 코스프레한 실제 인물을 거리에 따라 단계적으로 촬영해 동일 사이즈로 출력한 연작, 그리고 2000년대 디아블로 II의 소박한 포토리얼리즘이 동원했던 프리렌더드(pre-rendered) 2D 이미지의 부자연스런 매끈함을 재현한 ‘팔라딘의 인벤토리’ 연작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박승만의 작업에서는 디테일 레벨의 축소와 증대의 축을 계층적 세로축이 아니라 상대화된 가로축으로 전제하는 태도가 두드러지며, 우리가 편의상 ‘실제’와 ‘가상’이라 부르는 양 끝과 그 사이 점들이 이루는 각각의 거리가 일종의 식별번호와 같은 무엇이 될 뿐인 세계관을 제안하는 것이다. ‘팔라딘의 인벤토리’ 연작이 게임의 이미지 파일을 코스프레하는 사진에 다름 아닐지라도, 그 인형 놀이를 수행하는 누군가의 충일감을 누가 무엇으로 박탈할 것인가. 박승만은 이 모든 것이 그저 갖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