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마칭의 노출과다에 현실의 조리개를 조이기

김맑음




“… 카메라를 두세 대만 배치한다면, 오래지 않아 이집트 원정시에 처음 시작되었던 여러 저명한 석판 위의 글들의 기록 작업들이, 어림짐작으로 그려진 것에서 정확히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 그 세부의 정확성과 진실한 복제라는 면에서 더 나을 것입니다.”

 


이 글은 박승만 작가의 개인전 《점사》의 가장 안쪽에 전시되었던 한 사진에서 시작한다. 이 사진은 바닥에 놓여있는 구조물에 지탱되어 살짝 기울어져 있다. 그렇기에 흔히 사진을 관람하기에 최적화된 높이로 벽면에 전시된 작품과 다른 눈높이로 바라보아야 한다. 바닥에 기대어져서 놓인 이 사진은 이미 그 자체로 현실의 중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그 이미지는 그러하지 않다. 


그 사진의 이미지를 기억한다면, 이를 ‘사진’으로 지칭하고 있는 위의 몇 문장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소실점을 향해서 나아가는 그리드와 구름을 배경으로 삼아 은색의 총이 떠 있는 이미지, 좀 더 3D 툴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그것이 리얼타임 3D 제작 툴 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의 기본 배경임을 알 수 있다.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이미지는 컴퓨터 화면을 스크린샷으로 캡처한 것처럼 보인다. 가상 자체에서 비롯되어서 그 세계를 기록하는 “스크린 샷은 일종의 미래의 사진과 비슷한 종류로 언급되는 만큼, 이는 분명 포스트(post-)로 나아가는 미래의 사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미래의 사진은 이 전시에 없다. 오히려 현실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언리얼 엔진의 또 다른 기본 화면인, 촬영 장비와 조명을 조정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는 그 현실의 촬영 구도를 따라 복제한 가상 환경이다. 사실상 가상 공간에서 3D 그래픽을 구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실과 다르게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델링(modeling)과 렌더링(rendering)이 그것이다. 모델링은 메시 데이터를 활용해서 물체의 형체를 만든다면, 아무것도 없는 표면을 위장시키듯이 소스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 렌더링이다. 이 때의 소스는 또 다른 2D 그래픽이기도, 외부에서 촬영한 사진이 되기도 한다. 이 렌더링 과정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다게레오 타입에서부터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기술이 발전할 때까지 늘 필수조건으로 존재했던 ‘빛’이다. 빛을 최대한 현실과 유사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과정은 사진 기술과3D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동일하게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기술의 발전은 사람이나 사진이 대상을 바라보고 포착하는 방식에 기인하고 있다. 최근 3D 시뮬레이션에 활용되는 레이 트레이싱(Ray tarcing)은 사람이 빛을 인지하는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데이터와 프로세스 과정 값을 구하게 된다. 덧붙여 최근에는 더 나아가서 표면에 부딪히는 방법이 아닌 거리함수를 구해서 데이터 소모를 더 줄이는 레이 마칭(Ray marching) 알고리즘까지 등장하게 된다. 빛을 데이터로 여기고 최적화된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표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가상 공간에 떠있는 촬영 기기는 다시금 사용자에 의해서 적당한 위치를 선정하여 그것을 촬영한다. 가상을 촬영하기. 그것은 현실의 촬영 과정을 모방하면서 가능하게 되었고, 그 세계에서는 그것이 바로 사진이었다.


현실을 너무나 닮아 있는 가상, 이 시점에서 가상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이제 어려워 보인다.  30여년 전 디지털 사진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3D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사실적 이미지의 합성을 가능하게 하지만 이 사실주의는 언제나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컴퓨터만으로는 어떤 임의적인 장면도 합성해 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평가로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분명하게 구분 지었다. 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는 사진을 절멸시킴과 동시에 더욱 단단하고 영화롭고 불멸의 것으로 만들”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디지털 사진은 기존의 사진을 사장시키지 못하였다. 필름과 암실의 과정을 모방했던 디지털 사진은 3D 가상공간에서는 오히려 모방해야 될 대상이 된다. “디지털 이미지는 전통적 사진의 시각적 사실주의보다 열등하지 않다. 완벽하게 사실적이다. 오히려 너무 사실적이다.”라는 말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디지털 이미지는 이제 가상 현실을 찍으면서 현실이 된다.’ “포스트 휴먼(post-human)이 되기 위한 의미를 대처하기 위해 매우 효과적인 포스트 포토그래피(post-photography)가 필요할 것이다”라는 말도 이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후의 사진이 아닌, 그것은 이제 가상 공간에서 진짜 사진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으레 사진의 역사에서 늘 수반되어 왔던, 사진을 둘러싼 잡음이다. 그것은 다게레오 타입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회화와 사진 사이에서 등장하였고, 디지털 촬영 이후에 그 결과가 스크린에 처음 등장하였을 때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 사이에서 등장하였고, 지금, 3D 시뮬레이션이 현실이 되는 지점에서 다시 소환되는 것으로, 모두 사진의 복제성과 관련한 우려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진이 마주한, 이전과 동일하게 위기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에서 《점사》에 전시되는 사진은 그 과정에 노동을 최적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낭비를 하는 방향을 택한다. 노동의 최적화는 늘 렌더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데, 하드웨어의 존재로 인해서 데이터 최적화가 되지 않으면 그 과정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 최적화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하여 그는 가상으로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을 다시 현실 속에서 모방하게 된다. 정확하게 구현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포토샵에서 소위 투명 배경을 만드는 과정인 ‘누끼 따기’를 따라하면서, 투명함을 상징하는 무늬를 인쇄하여 배경에 두고, 그 앞에서 길리슈트를 입고 촬영하는 순간까지 들어가 있다. 순간 포착이 가능한 셔터 스피드인 1/125를 사용하는 것은 마치 일시정지한 순간들로 이루어진 그래픽 환경과 닮은 사진을 만들게 한다. 또한 모형을 활용해서 도색을 하고 마스킹 테이프로 손수 그리드를 만드는 것은 가상의 기본 덩어리인 메쉬 그리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더하여 컴퓨터 내 가상이 그러하듯이 그 사물에 초점을 맞추어서 형태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조명 촬영 기법이 활용되었다. 사진가의 움직임은 그 가상의 동작과 분명히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무게가 없는 가상과 다르게 현실의 촬영은 이러한 노동이 쌓이면서 무게를 가지고 중력에 영향을 받게 된다. 


사진을 어딘가로 향하는 일종의 “차원의 문(portal)” 보았던 작가에게 그것이 문으로 연결되지만 차이가 있는 차원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중력의 영향일 것이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점차 동기화되는 이 시점에서 그의 사진은 현실이 들어갈 틈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은 현실이 가상에 소스를 제공하였듯, 가상은 현실을 점점 닮아가고, 그것으로 사람들은 다시 현실을 인지하듯이, 이 과정은 부지불식간에 각 차원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전제로 한다. 가상은 언제나 현실을 필요로 했고, 현실도 가상을 언제나 필요로 했다. 이곳의 사진들은 그 필요성의 반사되고 반복되는 것을 기억하며, 노동의 중력이 쌓이듯이 텅 빈 표면이 아니라 입자가 쌓인 상태에서 인화된다. 


시작점이 되었던 바닥 위의 그 ‘사진’을 다시 바라보자. 레이 마칭의 렌더링처럼  매끄럽게 마감된 이미지에 현실의 조리개를 조여본다. 그리고 그 배경에서 그리드가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굴곡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때 그것은 언리얼에서 현실의 장면으로 옮겨진다. 스크린 속의 가상을 다시 인화지의 표면에 정착시킬 때, 사진의 미래와 과거는 겹쳐지고, 피사체는 사진가의 눈앞에 등장하고, 그는 셔터를 누른다, SHOOT, 그것이 바로 사진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