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만

김얼터 (2024. 5)


사진 이후의 사진 ― 박승만의 엔젤릭버스터

윤율리 (2024. 5)




사진 이후의 사진 ― 박승만의 엔젤릭버스터

윤율리,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



박승만의 사진은 마술적이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의 사진에서 감각한 인상적인 면모다. 내가 본 한 묶음의 사진은 그가 가까운 가족의 부재를 의식하고 의심하면서, 결과적으로 그 부재를 기억하기 위한 방편으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기록’한 연작이다. 공중을 부유하는 장롱, 난데없이 천장에서 솟아오른 플로어 스탠드, 적지 않은 힘을 받아 일순간 휘어진 침구. 이런 장면이 현실에서 가능할 리 없다. 그러나 어느 시간에 세계가 멈춘 듯 오래된 사물을 공간 속에 변형하고 정지시킨 이 사진이 단지 현실의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기 위한 시험대인 것은 아니다.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우리가 심령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것처럼 오히려 사진이 가진 마술적 권능은 이 정처 없는 시각적 혼란에서 시작된다. 관습적인 사진의 방법론에 따라 세계의 물리적 현실을 따르는 이미지가,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재현될 수 없는, 손에 잡히는 구체성을 실전한 동시대의 단면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채취하는 것이다. 박승만이 지난 2000년대를 “사진이 살필 수 있는 풍경이 사라진 시대”라 부른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인식을 드러낸다. 오늘날 사진의 불가능성은 대체로 사진술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에서 비롯한다. 모든 곳에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이 시대는 시각성 과잉의 시간이라 호명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사진은 그 과다함의 토대임에도 스크린을 점령한 이미지, 그리고 편집 기술의 풍요와 각축하며 매체로서 퇴색을 거듭했다. 박승만은 지금의 현상을 일종의 “다원화”로 명명하며 자신의 고민이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다원화된 세계에서 현실의 대상을 기록하는 사진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론”과 그 “이후의 풍경”을 질문하는 것이다.(2024, 이상 「작가 노트」)


2023년 카다로그에서 열린 박승만의 개인전 《엔젤릭버스터 Angerlic Buster》(김세인 기획)는 그가 인지하고 실행에 옮긴 몇 가지 흥미로운 발상을 보여준다. 전시는 특정 세대가 가진 집단성이 디지털 환경에 동기화된 실체로 게임 ‘메이플 스토리’를 다룬다. 요컨대 게임이 의지하는 시각적 질서, 그와 불가분한 관계로 촘촘히 엮인 사회·문화적 내용, 다시 그것이 사진술을 통과해 갤러리 내부의 작품으로 결착하는 전반의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 《엔젤릭버스터》의 목표다. 전시에서 사진기(광학기술)와 사진 찍기(형식)의 양면을 통과한 결과는 일견 무용한 매체로 전락한 ‘올드미디어’로서의 사진을 다시 매개하려는 전술처럼 읽힌다. 자칫 무모해질 수 있는 이 발상은 작가가 표명하는 특유의 진지함과 함께 회의나 냉소로부터 의식적인 거리를 둔다. 〈노가다, 앵벌이, 쌀먹 이펙트〉(2023~)는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발생시킨 타격 효과를 이미지 파일로 추출 후 필름 카메라로 여러 차례 촬영한 결과물이다. 게임에서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다시 말해 시각적 효과(effect)와 인과적 효과(effect)가 교환되는 순간은 완전한 추상에 가까운 스크린 속의 데이터가 실재의 층위에 구체화되는 때다. 이 작품이 매체적 의미를 획득하는 원리는 금융 파생상품이 작동하는 원리와 비슷하다. 그것은 게임이라는 데이터의 집합 체계가 현실의 경제 원리와 어떤 식으로든 접합돼 있음을 암시하며, 게임 속의 재화가 현실에 축적된 자본과 거래된다는 뜻밖의 가능성으로부터 디지털 기반의 비물질 인터페이스를 노동의 기전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 실제로 현실 노동의 가치가 급변한 팬데믹 시기에 게임 속 캐릭터인 ‘엔젤릭버스터’를 이용한 노동은 그에게 작업을 생산하기 위한 토대로 쓰였다. 이 경험은 사진-이미지가 유일하게 현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때로 〈노가다, 앵벌이, 쌀먹 이펙트〉를 통해 가시화된다. 여기서 사진은 지구 전역을 통과하는 케이블 망, 보이지 않고 실감하기도 어려운 노동(자)의 존재, 언어로 인한 한계를 포괄해, 우리가 지역성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성질을 가볍게 압도하는 ‘효과’를 한 장의 이미지로 압축한다. 동시에 궁극적으로 사진 그 자체의 성질을 탐색하는 제도적 도구로 변모한다. ‘멀어지는 엔버’를 ‘10m’부터 ‘200m’까지의 물리적 단위로 분해한 일련의 연작, 그리고 〈50m 앞 코어젬스톤〉은 이러한 작가의 실험을 사진을 둘러싼 보기의 속성에 견준 작품이다.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은 후기 근대의 결정적인 특성을 유동하는 액체성에서 찾고자 한다. 그는 20세기 후반 일련의 철학적 논의가 기획한 ‘되기(becoming)’의 실현이 액체적 유동성의 환각일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아방가르드 혹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근대성으로부터의 탈주가 어떻게 실제 세계와도 멀어질 수밖에 없는가를 분석한다. 그렇다면 타격감은 더욱 의미심장한 용어다. 게임은 더 좋은 타격감을 만들기 위해 그래픽과 오디오, 순간적인 경직, 게임 엔진의 인과관계를 조합하고 조율한다. 반면 안과 밖이 혼란스레 뒤섞인 채 미세한 차이, 경계와 스킨(skin)의 감각마저 거의 희미해진 동시대의 세계에서 현실 표면을 더듬거나 타격하려는 미술의 시도는 점점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박승만이 쓴 그대로의 목적을 인용하면, 그가 사진을 통해 채취한 게임-추상-이미지의 단면은 “컴퓨터 그래픽 이후의 사진 매체가 존재할 수 있는 방법론과 확장 가능성”에 관해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선택지 중 하나다. 그는 초현실의 마술과 경합하면서 또 가상현실의 컴퓨터 그래픽과 겨루면서 고집스럽게 사진의 유용함을 증명하려 한다. 이렇듯 마술에/그래픽에 가까워진 사진을 작가는 “유사 사진”과 견주어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진이라 부른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사진에 잔존하는 유일한 사진성은 아닌가?(2024, 이상 「작가 노트」)



윤율리는 에이전시 오로라(AURORA)의 멤버, 일민미술관의 책임큐레이터, 큐레토리얼 플랫폼 웨스(WESS)의 공동운영자, 한성대학교 회화과의 겸임교수로 일한다. 계원예술대학교, 아카이브 봄, 아트플랜트아시아(APA),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더배곳 등에서 일했다. 『아르코 미디어 비평 총서 시리즈 10-1: 증상들』, 『레인보 셔벗』을 비롯해 몇 권의 미술서를 썼다.